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겐조 덴노 (문단 편집) == 생애 == 《일본서기》에 따르면 제20대 [[안코 덴노]] 3년 10월 1일, 아버지인 이치노헤노시하 황자(市辺押磐皇子)가 21대 [[유랴쿠 덴노]]에게 살해당하고, 호케(弘計, 후의 겐조 덴노)는 형인 오케(億計, 후의 [[닌켄 덴노]])와 함께 도망쳐 숨었다. 단바국(丹波国) 요사군(与謝郡, 지금의 일본 교토부 단고 반도의 동쪽)으로 갔고, 이후 하리마국(播磨国) 아카시(明石)와 미키(三木)의 시로(志染) 동굴에 숨어 살면서 형제 모두 이름을 다니와노 와라와(丹波小子)라 바꾸고, 시지미노미야케노 오비토(見屯倉首)를 섬기며 오랫동안 말과 소의 사육에 종사하고 있었다. 제22대 [[세이네이 덴노]] 재위 2년 11월에 니야(新室)에서 벌어진 연회 자리에서 노래로서 스스로 황족임을 밝혔다. 세이네이 덴노는 아내와 자식이 없었기에 칙사를 보내 이듬해 두 황자를 궁중에 맞아들이고, 4월 7일(5월 10일)에 형인 오케(億計)를 황태자로 삼았다. 호케(弘計) 자신은 황자가 되었다. 세이네이 덴노가 재위 5년 2월 27일에 붕어했을 때, 황태자였던 오케(億計)는 신분을 밝힌 큰 공로를 이유로 남동생 호케(弘計)에게 오오키미(대왕)를 양보하려 했고, 호케(弘計)가 이를 사양하면서 한동안 공석이 된 대왕위를 이토요아오 황녀가 집정했다. 결과적으로 형의 설득을 받아들이는 형태로 호케(弘計)가 겐조 덴노로 즉위했다. 황태자는 오케(億計)가 계속해서 맡았는데, 천황의 형이 황태자였던 사례는 그 이후 찾아볼 수 없다. 죄없이 죽임을 당한 아버지 이치노헤노시하 황자를 조문하고, 또한 아버지를 죽인 유랴쿠 덴노에 대한 보복으로 그의 능을 파괴하려 했으나, 외지에서 오랜 생활을 한 탓에 민중을 아끼고 사랑하는 정치를 했다고 전한다. 재위 3년 4월 25일에 붕어했다. 《고사기》(古事記)에는 38세(다만 치세는 8년이라고도 한다), 《일대요기》(一代要記)에는 48세로 되어 있으며, 즉위 전에 시비노오미{志毘臣, 헤구리 씨(平群氏)}와 사랑 싸움을 벌이다 밤에 그를 습격해 죽였다는 이야기도 《고사기》에 전하고 있다. 즉위기간은 485~487년으로 2년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